안철수와 포퓰리즘 [하나마나한 말들]


1. 들어가며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안철수 신당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익숙한 풍경이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와 대선에서도 안철수는 선거 판도를 바꿀 수 있는 핵심 인물로 지목되었다. 각 선거의 국면마다 안철수는 대승적 차원에서의 양보라는 형태로 후보에서 물러났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안철수가 정당을 구성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것이다. 정당 조직의 목적은 권력의 획득이므로, 정당을 구성하겠다는 것은 곧 권력을 추구하겠다는 선언이라는 분석이다. 

 안철수의 이러한 행보에, 안철수에게 잠정적 지지를 보내던 많은 사람들이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소위 "안철수 현상"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주된 비판은, 안철수가 구체적인 지향을 드러내어 정치적 시험대에 자신을 드러내놓기보다는 소외된 국민들의 열망만을 취하는 포퓰리즘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포퓰리즘 이론을 통해 바라본 안철수 현상은, 우리에게 여러가지 시사점을 던져준다.


2. 포퓰리즘의 개념

 "포퓰리즘populism"이라는 개념에 대해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는 무절제한 인기영합주의이다. 때문에, 우리 사회의 포퓰리즘 논쟁은 흔히 복지정책의 영역에서 이루어졌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그 정책은 정치적 인기를 얻기 위해 별 쓸모도 없는 일에 돈을 퍼주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책이다!" 

 이러한 견해는 포퓰리즘을 정책 자체의 성질로 파악한다. 정책의 내용에 따라 포퓰리즘적인 정책이냐 아니냐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언론에서도 "무상급식은 포퓰리즘 정책" "무상의료는 포퓰리즘 정책" 등의 표현을 사용하여 포퓰리즘을 정책 내용적 개념으로 한정짓는다. 그러나 정치학자들에 의해 정립된 포퓰리즘의 개념은 이와는 사뭇 다르다.1)

  포퓰리즘의 개념에 대한 여러 견해를 살펴볼 때, 포퓰리즘의 정의에 대한 일관된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최장집은 포퓰리즘을 "민중적 열정, 에너지, 동력이 사회의 자율적 운영 집단, 즉 정당이나 이익집단 또는 어떤 목표와 가치를 추구하는 운동 등으로 매개되지 않고 표출되는 현상"2)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반면 P. Taggart는 포퓰리즘은 일반적으로 정의되기는 어렵다고 말하며 그 중요한 성질을 통해 포퓰리즘의 본질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그에 의하면 포퓰리즘의 핵심적 성질은 대의제 정치에 대한 적개심, 마음속의 고향에 대한 낭만적 신비화, 중심이 없는 이데올로기, 위기 상황에 대한 대응, 일정 수준 발전하기 어려운 근본적 딜레마, 주변 환경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바뀌는 정체성이다. 이에 서병훈은 포퓰리즘을 "인민주권 회복론과 선동 정치인에 의한 감성 자극적 단순 정치라는 두 기둥 위에 서 있는 정치현상"이라고 설명하였다.3)

 포퓰리즘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위에서 볼 수 있듯이 여러 학자들의 설명은 일관적으로 포퓰리즘을 정치행태의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다. 포퓰리즘은 정책의 내용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국민과의 접촉 방식에서 비롯된다. 

 포퓰리즘을 정치행태 측면에서 바라볼 때 가장 강조되는 것은 포퓰리즘의 체제 우회적 성격이다. 포퓰리즘은 기존의 갈등 사회화 시스템을 우회하여 대중의 감정적 열망을 직접적으로 정치적 결과로 현출해내고자 하는 행태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전 국민에게 백만원씩을 드리겠습니다!" 만 포퓰리즘이 아니라, "여러분 정당이니 의회니 하는 건 다 썩었어요. 다 나쁜놈들이에요. 깨끗하고 선량한 제가 대신 여러분의 열망을 이뤄드리겠습니다!" 라는 식으로 인기를 모으는 것 또한 포퓰리즘의 한 형태라는 것이다.


3. 안철수와 포퓰리즘

1) 정당과 대의제에 대한 적개심

 안철수는 기성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회의와 불신이 만들어낸 틈을 비집고 등장하였다. 무상급식 등 여러 아젠다를 둘러싼 여야의 정쟁이 극에 달하고 이명박 대통령의 실정이 노출되어 사람들의 정치에 대한 피로감이 극에 달했을 때, 안철수는 마치 메시아처럼 국민의 열망을 등에 업고 한국 정치에 "강림"하였던 것이다. 등장해서부터 안철수가 강조한 것은 기성 정치와의 차별, 그리고 "상식과 원칙의 준수"라는 도덕 영역의 가치관이었다. 

 안철수 현상은 상식과 원칙의 안철수 대 부패하고 무능한 기성 정치세력의 구도로 도식화된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정당, 의회 시스템은 타파해야 할 악의 자리에 놓인다. 중요한 것은, 안철수가 비판하고 있는 것이 특정 정당이나 혹은 특정한 이념체계가 아니라는 점이다. 안철수의 비판은 오히려 정당 체제의 필연성에 대한 비판에 가깝다. 지금의 정당은 썩었기 때문에, 정당을 우회하는 것이 필요하거나, 혹은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 당시, 안철수는 무소속으로 대통령이 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하는 비판에 "무소속 대통령이 나라를 어떻게 끌고 가느냐는 질문이 나왔는데, 사실 본질적으로 그 질문을 할 때가 아니다" "(정당이) 낡은 정치시스템을 개혁하고 혁신해서 다시는 그런 정치를 안 하겠다고 (하고), 국민이 믿을 때 `무소속 대통령이 가능하냐'고 물어봐야 한다"4)고 답했다. 이는 정당이 자기 역할을 다 할 필요가 있다는 온건한 일반론처럼 보인다. 하지만 당시 안철수가 무소속으로서 국민의 열망을 반영한다는 기치 하에 대권에 대한 뜻을 밝혔다는 점을 감안하면 다른 맥락을 읽어낼 수 있다. 어차피 정당이 제 역할을 제대로 못 하고 있는데 무소속이면 뭐 어떠냐는 것.

 여기에 더해, 안철수는 기성 정당의 "기득권 내려놓기"라는 이름으로 대의제의 핵심적 갈등 사회화 기제인 정당을 약화시키는 정책들을 주문한다. 국회의원수 축소, 정당 보조금 삭감, 중앙당 축소 및 원내정당화, 기초자치단체 정당공천 폐지 등 안철수가 내 놓는 정치 개혁 플랜들5)은 모두 정당을 약화시키고 그 기능을 의원에 대한 지원 정도로 제한하는 것들이다. 이에 반발하는 정치인들은 어김없이 "밥그릇 지키기"라는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최장집을 비롯한 많은 정치학자들은 이러한 개혁이 정당의 역할을 약화함으로서 결국 민주주의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한다.6)

 이러한 기성 대의제-정당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은 포퓰리스트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포퓰리스트들은 스스로 진정한 민주주의자라고 자부하는 바, 정부와 기성 정당, 언론 등에 의해 체계적으로 무시당하는 대중의 분노와 슬픔, 이익과 의견을 대변한다고 주장"7)하는 것이다. 포퓰리즘은 기존 정치체제에 대한 적개심을 동력으로 존속한다. "고전적 포퓰리스트들은 물론이고 현대의 서구나 라틴 아메리카 등 모든 곳의 포퓰리스트들은 정치를 더럽고 타락한 것으로 간주한다. 인민들을 나락으로 몰아넣고 있는 부패한 정치꾼들의 활동무대가 바로 정치 현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기성 정치인들에 대한 혐오를 정치 자체에 대한 부정적 시각으로 연결시키며, 기득권 질서에 대해 반발하면서도 현실 정치에 대한 직접 참여는 기피한다. 오히려 자신이 기존 정치권 바깥에 있음을 강조하며, 기성 정치권을 질타하고 비난함으로써 자신들의 존재를 정당화하는 것이다."8) 라는 서병훈의 말은 포퓰리즘의 이러한 성질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행태가 결국은 민주주의를 해칠 것이라는 점이다. 정당은 대의민주주의의 성립과 정상적인 작동에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E. E. Schattchneider는 "정당을 빼놓고는 민주주의를 말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고, Neumann은 "정당은 근대 정치의 생명선"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정당이 결국 가장 폭넓게, 가장 효과적으로 모든 계층의 의사를 집약하고 갈등을 사회화할 수 있는 기구이기 때문이다. 투표라는 제도를 통해 첨예히 경쟁하는 정당은 운동이나 직접행동 등의 다른 방안보다 훨씬 민주적이며 지속가능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9) 정당간의 경쟁 구도, 즉 정당 체제는 사회적 갈등과 균열을 조직화하여 투표 가능한 대안으로서 유권자에게 제시한다. 유권자들은 정당을 통해 의사를 통합하고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이러한 체계는 선거로 제도화됨으로써 가장 보편적으로 수행된다. 정당이 없이 이런 보편적인 의사 전달은 불가능에 가깝다. 설령 직접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하더라도 그러하다. 직접민주주의 제도는 오히려 유력자의 개입가능성을 높이고 모든 국민에게 이슈에 대한 견해를 요청함으로써 기득권, 엘리트 중심의 오도된 합의(deceived consensus)를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물론, 한국의 정당이 이러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다. 많은 학자들이 한국 정당들의 행태를 비판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당이라는 제도 자체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정당민주주의의 운영이 잘못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한국 정치의 많은 문제는 정당의 역할이 너무 약해서 행정부가 설정하는 아젠다에 끌려다니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한국 정치 정상화의 첫 단추는 정당의 정상화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안철수의 개혁이 한국 정당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이 아니라 정당 자체를 약화시켜 현존하는 부정적 영향력을 줄이려는 것이라는 점이다. 정당이 수행하고 있는 역할 뿐 아니라 정당이 배제된 자리를 무엇이 대체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면 이러한 개혁이 바람직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포퓰리즘을 연구하는 학자들 또한 이런 맥락에서 포퓰리스트들의 정당, 의회에 대한 공격이 정치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한다. "민주주의를 근간에서부터 위협하는 것이 바로 포퓰리즘"10)인 것이다.

2) 엘리트주의로의 귀착

 정치학자들은 포퓰리즘이 결국은 엘리트주의를 내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포퓰리즘이 '진정' 국민을 위한 정치를 표방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실제로 엘리트주의적 성격을 보이는 많은 포퓰리즘 정권을 알고 있다. 포퓰리즘 정권에서 정책들은 "국민을 위한 정권의 결단"이라는 형태로 하향식으로 집행된다. 정책의 과실을 누리는 것은 민중이지만 정책 결정과 집행은 철저히 정치엘리트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서병훈은 그 원인을 포퓰리즘과 엘리트주의의 유사한 성질에서 찾는다. "포퓰리즘과 엘리트주의는 세상을 이분법으로 나누어서 본다는 점에서 정확하게 일치"11)한다는 것이다. E.Laclau는 이런 모습을 엘리트주의와 포퓰리즘은 서로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거울처럼 서로를 비추는 존재라고 비유한 바 있다.

 안철수 역시 선악의 명확한 구분, 즉 악으로서의 기성 정치와 선이자 구원자로서의 자기 자신을 대비시킨다. 이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뒷받침할 수 있는 세력이 두가지 등장하는데, 하나는 안철수가 항상 강조하는 "기성 정치권에 실망한 국민"이며, 다른 하나는 "전문가"이다. 부패한 세력인 정당을 갈음할 수 있는 세력으로 안철수는 전문가를 꼽는다.12) 안철수는 대선후보 당시 야권단일후보 경선 방식 중 하나로 전문가 평가를 제시했는데 이는 이전에 없던 이례적인 방식이다. 안철수의 전문가에 대한 신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안철수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권력의 상당부분을 전문가인 관료들에게 넘기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는 한국 정치의 테크노크라시(technocracy-기술 관료에 의한 사실상의 과두정치)화를 촉진할 수 있는 위험한 방안으로, 많은 학자들은 오히려 기술관료에 대한 견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외에도 안철수는 여러 입장발표에서 꼬박꼬박 국민과 전문가의 의견을 통해 의사결정을 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악으로부터 격리된 순수한 전문가집단을 기반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이는 위에서 언급한 포퓰리즘의 성질과 꼭 닮아있다. 

 안철수가 전문가 정치를 강조하는 이유는 그가 정치적 경쟁을 악으로 보기 때문이다. 안철수의 정치관은 다분히 선악이분적이며, 싸움이 곧 악이다. 안철수는 정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최선의 방안이 있으며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듯 보인다. 최선을 방안을 찾는 데 필요한 것은 전문가들의 전문지식과 선의이다. 정치세력들의 경쟁을 통해 "절대선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사회적으로 조율된 결정"을 내리는 것을 골자로 하는 민주주의와는 완벽히 배치되는 개념이다. 후마니타스 박상훈 대표는 안철수의 이런 정치관을 "아직까지 안 후보는 군주정과 엘리트 중심의 귀족정 원리가 결합해 있는 형태로 밖에 안 보인다."13)는 말로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재미있는 점은, 안철수는 정작 그 전문가들의 말조차 잘 수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모두가 잘 아는 최장집과의 갈등을 한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안철수는 기껏 최장집을 영입했지만, 위에서 보듯이 안철수가 내놓은 정책들은 죄다 최장집이 극도로 반대하는 방향인 정당의 약화를 책동하는 것들이었다. 그 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했지만 최장집의 견해가 수용된 것처럼 보이는 부분은 놀랍게도 단 하나도 없다. 최장집이 안철수를 떠나며 던진 "내 역할이 없었다"는 말14)은 이런 측면에서 의미심장하다. 안철수가 내놓는 정책들 중 밑에서부터 제안되어 올라간 것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 또한 안철수의 엘리트주의적 성격을 바라볼 수 있는 한 측면이다. 안철수는 포퓰리즘은 "이름과 걸맞지 않게 인민은 허울뿐이고 카리스마를 앞세운 지도자가 주인공이 되는 것"이며, "엄밀히 말하면 새로운 형태의 과두 지배체제에 지나지 않는다"15)는 지적과 정확히 동일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3) 모호한 이데올로기와 기회주의적 노선, 자가당착

 안철수에 대해 가장 많이 나오는 지적 중 하나는 그가 "정말로 뭘 말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중요한 정치적 사안들에 대해 안철수는 그리 명백한 견해를 밝히지 않는다. 물론 뭔가 견해를 밝히긴 하는데, 죄다 도덕책에서 나올 법한 얘기들이다. 철도파업의 국면에서 안철수 측은 "노사정 위원회를 재개해야 한다"16)와 같은 사실상 실현가능성도 의미도 없는 얘기를 툭 던졌을 뿐이며, 많은 언론들이 철도파업 정국에서 안철수의 존재감이 전혀 없었다고 지적했다.

 안철수가 흔히 비유하듯 "공기가 되었"던 것17)은 이번뿐만이 아니다. 국정원의 선거개입에 대해서도 안철수는 국정원 선거개입 문제는 사법기관인 특검에 맡기고 국회는 그 문제에서 손을 떼자고 주장18)했는데, 의회가 지극히 정치적인 문제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주장 역시 실현가능성도 의미도 없다. 오히려 안철수의 의회에 대한 불신과 엘리트에 대한 믿음만을 확고히 보여줄 뿐이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모호성은 흔히 모두를 대표한다는 기치 하에 일어서는 포퓰리즘의 모습으로 지적된다. 포퓰리즘은 선악의 이분법을 근간으로 하기 때문에, 이데올로기적 대립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데올로기는 경합 가능한 개념이다. 아니, 이데올로기는 경합을 전제로 하는 개념이다. 한 이데올로기는 끊임없이 다른 이데올로기와 부딪힘으로서 스스로를 정체화한다. 그러나 선악은 다르다. 선과 악 사이에서 경합은 이루어질 수 없다. 선은 그냥 선이고 악은 그냥 악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포퓰리스트들은 그저 자신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주장할 뿐 이데올로기를 내포한 의미있는 말을 하지 않는다. P.Taggart가 포퓰리즘의 중심 주제 중 하나로 "중심이 없는 이데올로기"를 제시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안철수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이런 측면에서 어느정도 타당성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안철수는 말을 하긴 하지만, 사실상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나 다름 없는 말들을 너무도 많이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모호성은 포퓰리즘이 현실정치로 나아갈 때 걸림돌이 된다. 포퓰리즘은 정치세력의 근간이 될 이데올로기는 없이 기존 정치에 대한 회의와 도덕적 이분법만을 가지고 세력을 얻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정치 바깥에 머무를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포퓰리스트들은 재미있는 형태로 정치에 뛰어들곤 한다. 그들은 "언제까지나 정치에 등을 돌릴 수는 없으며, 정권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더러운 정치판에 뛰어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못해 정치에 참여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데, 예외적 상황, 특히 국가의 위기적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구국의 결단'을 내리는 모양새를 취한다."19)

 안철수 또한 이런 형태로 정치에 뛰어들었음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안철수는 계속해서 자신은 정치를 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20)하고, 자신은 정치인으로서는 부적절하다고 말해왔다. 심지어는 정치에 뛰어든 이후에도, 안철수는 "~했으면 정치 안 했을 거다" 라는 식의 얘기를 종종 던졌다.21)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니 '구국의 결단'을 내려 정치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포퓰리스트들의 '전형적 행태'를 말한 서병훈의 글이 마치 안철수에 대한 예언처럼 읽히는 것은 흥미로운 지점이다.22)

 '구국의 결단' 뒤에도 문제는 발생한다. "제도권 외곽에 있으면서 누리던 정치적 프리미엄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로 지지자들에게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어야 하며, 그래야 새로운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포퓰리스트들은 현실 정치에 몸담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현실 정치를 전적으로 외면할 수도 없는 자기모순 앞에서 방황하게 된다."23) 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은 정당의 구성이다. 포퓰리스트들은 대개 정당을 비판하면서 정당의 약화와 전문가 정치를 강조하여 세력을 불리곤 하는데, 정작 정치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정당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퓰리즘 정당의 형성은 지지부진하게 이루어지거나, 일종의 임시정당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이는 안철수의 지지부진한 정당 형성을 설명해주는 좋은 틀이다.


4. 포퓰리즘의 배제와 더 나은 정치를 위하여

 포퓰리즘은 기성 정치가 도덕성을 상실하고, 지배 엘리트에 대한 신뢰가 저하되며 인민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없는 상황에 나타난다. "정당체제의 쇠퇴, 피동적 대중의 양산 등 현대 사회의 구조적 특성이 포퓰리스트의 출현을 조장"24)하기도 한다. 이런 환경 하에서 포퓰리스트들은 국민들의 배신감과 억눌린 열망을 대신 표출해주는 대가로 많은 지지를 얻는데, 이는 기성 정당들이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유사 포퓰리즘적 행태를 보이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포퓰리즘의 등장은 그 자체로 문제지만, 그 이전에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를 경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N.Bobbio가 말했듯,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의 약속위반을 먹고 살"기 때문이다. 따라서, 포퓰리즘을 배제하는 작업은 포퓰리즘 그 자체에 대해서만 이루어져서는 불충분하다. 포퓰리즘의 배제를 위해서는 정당을 통한 대의 민주주의가 회복되어야 하며, 이는 결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뜻한다. 이는 어려운 일일 것이나, 반드시 이루어내야 할 일이다. 

 위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안철수의 행보는 학자들이 정리하는 포퓰리즘의 전형적인 그것과 매우 닮아 있다. 안철수와 그 세력을 포퓰리즘 세력이라 한다면, 안철수의 등장과 인기몰이는 한국 대의민주주의의 약화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정상화를 위한 고민이 그 어느때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다.


----<각주>----
1) 재미있는 것은, 안철수 본인도 포퓰리즘을 이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안철수는 경상대 강연에서 "(정치권이 나의 정치혁신안에)반대할 줄 알았고 예상대로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지만 여러 말씀 중에 제일 가슴 아팠던 부분은 국민들의 정치혐오에 편승한 포퓰리즘이라는 말이었다" "과연 누가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할 정도로 무서운 말이었다" "그게 포퓰리즘이라면 지역마다 개발공약을 내고 장밋빛 공약을 내는 게 포퓰리즘이다. 특권을 내려놓자는 게 왜 포퓰리즘인지 지금도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한 바가 있다. 
2) 최장집, <어떤 민주주의인가>, 2007
3) 서병훈, <포퓰리즘>, 책세상, 2008
4)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21011153210483 
5)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1455191
6) 한 예로 국회의원 수 축소에 대해 최장집은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너무 적다. 오히려 500명으로 늘려야 한다"라고 반박한 바 있다. 강원택 교수 또한 이전에 논의된 의석 수 축소에 부정적 견해를 보였으며, 이외에도 장훈 등 많은 정치학자들이 국회의원 수 축소는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7) 서병훈, <포퓰리즘>, 책세상, 2008 
8) 상게서
9) 민주정치에서의 정당의 역할에 대해서는 샤츠슈나이더나 최장집 등의 논의를 추천한다. 이 글에서는 자세히 다루지는 않겠다. 
10) 서병훈, <포퓰리즘>, 책세상, 2008 
11) 상게서
12)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8&aid=0002157862 
13) 2012. 10. 1 미디어오늘 인터뷰 
14) http://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133445 
15) 서병훈, <포퓰리즘>, 책세상, 2008 
16)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22&aid=0000041810 
17) 인터넷에서 존재감이 없는 사람을 비유할 때 흔히 이르는 말
18) http://www.ytn.co.kr/_ln/0101_201311042109102371 
19) 서병훈, <포퓰리즘>, 책세상, 2008 
20)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6674745&ctg=1000&cloc=joongang|article|headlinenews 
21)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30604202906742 
22) 서병훈의 책은 2008년에 쓰여졌음을 밝힌다. 
23) 서병훈, <포퓰리즘>, 책세상, 2008 
24) 상게서


지방자치에 정당이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한가 : 기초자치단체 정당공천제 폐지를 중심으로 [하나마나한 말들]


1. 들어가며

 기초자치단체 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를 주장하는 물살이 거세지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새누리당과 민주당 모두가 기초자치단체 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안철수 의원 또한 같은 견해를 표해 큰 호응을 얻었다. 이후 다양한 정치계층에서 기초자치단체 정당공천제 폐지를 주장하고 나섰으며, 최근 이루어진 광역자치단체장들에 대한 조사에서는 17명의 광역자치단체장 중 단 한명만이 기초자치단체 정당공천을 유지해야 한다고 밝혔다.1) 여론 또한 기초자치단체 정당공천제 폐지에 우호적이다. 조사대상 국민의 63%가 정당공천을 폐지해야 한다고 밝혔다는 한 여론조사 결과2)는 이러한 동향을 잘 보여준다. 

 기초자치단체 정당공천제 폐지에 많은 사람들이 찬성하는 것은, 결국 우리 사회에 팽배한 정당에 대한 불신 때문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정당은 명백히 약하고,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당은 존재하는 균열을 사회화하여 정치적 의제로 형성해내기보다는 행정부가 제시하는 의제에 끌려다니고 있고, 그 의제 내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이니, "(정당)정치는 공분의 대상이 되었다."3)는 말을 들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실이 기초자치단체 정당공천제 폐지의 확고부동한 근거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정당은 근대 정치의 생명선"이라는 Neumann의 말마따나, 현대 대의민주주의에서 정당의 역할은 필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정당의 역할을 강조하는 이들은 지방자치에서 정당을 배제하는 것이 오히려 민주적이고 바람직한 지방자치의 형성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글에서는 기초자치단체 정당공천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과, 그에 대한 반론을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 독자들이 지방자치와 정당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4)


2. 지방자치의 비정치성 논쟁

 기초자치단체 정당공천제 폐지를 주장하는 하나의 강력한 논거는 지방자치는 정치보다는 행정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는 20세기 미국 진보주의 운동과 유사한 맥락에서 나온 논의라고 볼 수 있다. 19세기 중엽의 엽관제5)에 의해 발생한 부패와 비효율 때문에 정치에 회의를 느낀 이들이 진보주의 운동을 통해 "정치와 행정의 분리"를 주장한 것과, 현재 한국에서 기초자치단체 정당공천제 폐지가 대두되는 모습은 많이 닮아있다. 정당참여 배제론자들은 지방자치는 정치적 갈등 조율보다는 주어진 목표의 효율적 시행이라는 행정의 성격이 강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지방자치에 정당이 개입하면 정파적 논리에 따라 비효율성이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쓰레기 줍는 데 민주당 공화당이 따로 있냐"는 말은 지방자치의 행정적 성격에 대한 견해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표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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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정당의 역할을 강조하는 이들은 이러한 견해는 지방자치를 너무 단순화한 견해라고 비판한다. 행정적 기능은 지방정부가 수행해야 할 아주 중요한 기능이기는 하지만, 그에 못지 않은 정치적 역할 또한 지방정부에게 주어진다는 것이다. 행정의 지방화, 분권화가 이루어지면서 지방자치의 정치적 역할은 더욱 커졌다. 그중에서도 특히 갈등의 관리와 조율 기능이 강조되는데, 행정의 분권화로 지역내 혹은 지역간 갈등이 빈번하게 발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서울시 무상급식 조례에 대한 각 구 내에서의 의견갈등이나 방폐장 유치를 둘러싼 포항, 경주, 울진의 갈등과 같은 사례들은 지방자치단체가 수행해야 할 일이 더이상 행정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정당참여 긍정론자들은 이러한 정치적 이슈는 결국 정당을 통해 사회화시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3. 지방정치의 중앙정치에의 예속 문제

 정당참여 배제론자들은 지방선거에 정당참여를 인정할 경우, 지방의 이슈가 아닌 전국적 이슈 혹은 중앙당에 대한 평가에 따라 지방공직자가 선출될 것을 우려한다. 이는 결국 중앙 이슈가 지방 이슈를 매몰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주장이다. 근래의 지방선거가 상당부분 전국단위 이슈에 의한 "공중전" 성향을 띠었다는 점이 그 근거로 제시된다. 이러한 우려는 한국의 정치현실과 맞물려 더 큰 문제를 발생시킨다. 한국의 정당 내부구조는 상당부분 집권적이고 수직적인 형태를 띠고 있는데, 이러한 구조에 의해 중앙의 정쟁이 지방으로 이어져 지방에서의 대리전 양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지방정치를 실종시키고 지역 이슈 해결을 방해하는 결과를 낳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공천의 민주성 또한 문제로 제기되는데, 후보자 공천이 상당부분 정당 지도부에 의해 집권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된다. 정당 배제론자들은 정당공천제 하에서는 정당이 후보자에 대한 독점적인 공천권을 행사함으로서 지방정치인이 중앙정치인에게 종속되게 되고, 이는 지방정치인이 지방 이슈보다는 중앙 이슈에 천착하도록 만들어 지방자치를 질식시키게 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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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당 긍정론자들 또한 우리나라 정당의 수직적 지배구조가 문제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이들은 정당 배제론자들과는 다른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본다. 이들이 강조하는 것은, 정당공천을 통해 지방 정치인들이 중앙 정치와 연결되게 되면 중앙이 지방에 악영향을 미치는 독단적인 판단을 하기 어렵게 된다는 점이다. 지방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거나 지방에 일방적인 피해를 주는 정책을 강행할 경우 자신들의 지지기반을 상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중앙과 연결된 지방정치인들은 지역의 여론을 중앙에 전달하는 연결고리이자 중앙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집행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거부점(veto point)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정당 긍정론자들의 주장이다.

 동시에, 정당 긍정론자들은 지역 정치인의 이러한 기능이 집권적 정당을 분권화시키는 데에 도움이 될 가능성 또한 강조한다. 지방정치에서의 상향적 의사전달과 거부점 역할이 중앙정치에 과집중된 권한을 제어하고 분산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들은 정당의 집권적 수직지배구조는 "중앙과 지역을 막론하고 정치 전반에서" 풀어가야 할 문제일 따름이며, 이를 이유로 지방자치단체 정당공천을 폐지하는 것은 "정당의 집권적 지배구조 때문에 각종 문제가 발생하니 국회의원 정당공천을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이상한, 선후가 뒤바뀐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4. 정당의 책임성 저조 문제

 기초자치단체 정당공천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은 한국의 정당은 선진국의 정당과는 달리 그 책임성이 매우 저조하며, 이러한 정당이 그 영역을 넓히면 오히려 부작용만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당 자체는 바람직한 제도이나, 한국의 정당은 오히려 부작용만 더 일으킬 수 있는 잘못된 정당이기 때문에 배제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이다. 특히 중앙집권적 공천제도에 의해 발생할 공천비리가 문제된다. 이런 이유로 이들은 "설혹 정당참여 허용의 필요성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정당참여는 배제되거나 혹은 여건이 성숙할때까지 허용이 연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6) 이러한 주장과 결을 같이하여, 정당이 국민적으로 신뢰를 잃고 있는 상황에서 불신받는 정당이 주체가 되어 지역주민을 지배하도록 하는 기초자치단체 정당공천이 과연 타당한 제도인가 하는 회의적 견해 또한 제기된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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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당 배제론자들의 이러한 견해에 대해, 정당 긍정론자들은 그것이 정당에 대한 과도한 비관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비판한다. 현재 정당이 이러한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고쳐져야 할 정당현실에 대한 진단으로 타당한 것이지, 이것을 근거로 정당참여를 배제하는 것은 정당에 대해 사망선고를 내리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이들의 이러한 주장에는 위 항목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정당을 지역사회에 밀착시키는 것이 정당현실의 개선을 위한 한 방안일 수 있다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정당 배제론자들의 이같은 주장이 오히려 정당현실의 개선기회를 틀어막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그 핵심이다. "(정당)불신의 대상에서 중앙당이 예외가 아닌 한, 지방에서 정당참여가 금지되어야 한다면 당연히 중앙정치에서도 정당참여가 배제"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반문8) 또한 던져진다.

 또한 정당 긍정론자들은 오히려 정당의 배제가 지역정치의 책임성 약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당공천이 없을 때 정당이 (인물에 대해) 책임을 지면서 그다음 선거에서 평가를 받는 책임성이 없어지는 것”이며 “(정당 대신) 개인이 책임을 지게 되는 것 (...) 행정기관이나 지자체 운영 등 (인물의) 역할과 권력은 비대한데, 여기에 따르는 책임은 약해지는 것"이라는 최장집의 주장9)이 이러한 견해를 담고 있다. 정당은 후보자에게 상표가치brand name"을 제공10)11)하여 유권자에게 정보를 제공함과 동시에 후보자의 책임을 공유한다. 이를 통해 혹여 후보자가 책임에서 도피하거나 책임을 무시하더라도 정당이 책임의 주체가 되어 책임성을 확보할 수 있으며, 이러한 기제가 배제될 경우 지방자치에서의 후보자의 책임성은 현저하게 낮아진다는 것이다.

 일부 정당 긍정론자들은  "정당배제론은 현재 지방정치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문제점을 정당의 탓으로 왜곡하고 과장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혹은 "오늘날 지방정치에서 나타나고 있는 문제점들의 대개는 정당공천 탓이 아니라 '경쟁과 견제의 민주주의 원리'가 작동하고 있지 못한 지방정치 자체에 내재"12)된 것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지방자치에 정치적 요소가 너무 유입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충분히 정치적이지 않은 지방정치가 문제의 원인이 된다는 주장이다.



5. 결론

 정치가 분권화되고, 지방 이슈에 대한 자치의 원리가 강조되면서 지방자치의 중요성은 날로 강조되고 있다. 지방자치는 민주주의 학습의 장으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뿐 아니라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현장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지방자치제도에 대한 결정은 상당 부분 "중앙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맞물려 그때 그때의 상황논리에 의해 파행적으로 이루어져"13) 온 것이 사실이다. 

 이 글을 작성한 나 자신과 이 글에 제시된 각 논문들은 모두 기초자치단체 정당공천제의 폐지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 의견이 옳다는 점을 이 글에서 강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방자치가 중앙정치로부터 유리된 무언가가 아니라 민주주의 정치과정의 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지방자치는 정치의 영역이 아니므로 정당의 역할을 배제해야 한다는 견해는 지방자치의 본질을 다소 잘못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오히려, 정당을 배제하는 것과 긍정하는 것 중, 어떤 것이 '민주 정치의 한 과정'으로서의 지방자치에 더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따라서, 기초자치단체 정당공천제에 대해 판단하기 위해 우리는 기존에 제시된 행정적 효율성과 동시에 참여와 대표, 책임과 같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런 요소를 통합적으로 고려하여 "정치로서의 지방자치"의 발전을 목표로 한 결정을 내릴 때 지방자치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며, 그를 통해 중앙정치 또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각주>----
1)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6668402 
2) http://www.simin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6786
3) 최장집,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2002
4) 이하 내용은 <이승종, 지방자치발전을 위한 정당참여의 방향, 2009>의 내용을 상당부분 참고함
5) 공무원의 임면을 (정치)당파에 근거하여 시행하는 제도이다. 엽관제하에서 공직은 일종의 정치적 트로피로서 승리한 정파에게 배분되는데, 이러한 모습을 잘 보여주는 슬로건이 "전리품은 승자에게(to the victor, belong the spoils)"이다.
6) 최병대, 1995 
7) 이남영,1995 
8) 이승종, 2009 
9) http://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40956 
10) 조진만, <여론조사 공천의 이론적 쟁점과 기술적 과제, 그리고 정당의 선택>, 2012
11) 이승종, 2009 
12) 유재일/정상호, <지방정치에서 정당정치의 위상과 과제>, 2009
13) 이승종, 2009 

지휘통제시스템의 변화, 그리고 C4I [하나마나한 말들]


1. 과거의 전쟁

 전투의 규모는 한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커졌지만, 별다른 통신장비가 갖춰지지 않은 과거 어느 시대의 전투를 생각해보자. 나폴레옹 전쟁 정도를 생각하면 적절할 것이다. 전투를 준비하는 단계에서, 지휘관은 척후병을 통해 수집된 정찰정보를 최대한 이용하여 작전을 세우고 그 작전을 휘하 장수들에게 하달한다. 전투가 개시되면 휘하 장수들은 지휘관의 의도에 부합하게 병력을 운용하려 하는데, 그 과정에서 엄청난 양의 새로운 정보가 입수된다. 이렇게 얻어진 정보는 전령을 통해 지휘관에게 전달되고, 지휘관은 이 정보를 고려하여 휘하 각 부대에 새로운 명령을 전달한다. 물론 명령 전달은 전령을 통해 이루어진다.

 이러한 체계 하에서 발생하는 비효율은 무시하지 못할 것이었다. 척후병은 종종 적에게 사살당해 어떤 정보도 제공하지 못하곤 했으며, 전령이 행방불명되거나 길을 잃어 정보나 명령이 전달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다. 정보와 명령이 제대로 전달되는 경우에도 문제는 존재했다. 전령과 척후병이 오가는 시간이 너무 길어, 급변하는 전장환경을 제대로 반영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적이 전진한다는 전령을 보내고 명령을 기다리는 사이에 적이 후퇴하거나, 적의 약한 좌익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실은 전령이 부대를 향해 말을 달리는 사이에 적 좌익의 전력이 대폭 증강되는 등의 일이 심심찮게 발생하곤 했다. 

 부대 간의 긴밀한 연계가 필요한 작전에서 이러한 약점은 더욱 심화되었는데, A부대가 지휘관에게 전령을 보내고, B 부대가 지휘관에게 전령을 보내고, 지휘관이 이를 통해 얻은 정보를 통합해서 A,B 각 부대에 명령을 내리는 긴 과정의 끝에야 지휘관의 통제 하에 부대 간 연계가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문제들이 있었기 때문에, 과거 전투의 상당 부분은 지휘관의 의도에 의해 수행되기보다는 최초 수립된 작전에 입각한 각 휘하 부대장들의 재량에 의해 수행되곤 했다. 이 과정에서 부대장의 독자적 판단이 지휘관의 의도와는 어긋나는 경우 또한 비일비재했다. 

 이러한 과거 전쟁 지휘 방식의 문제점을 결정적으로 보여준 전투가 바로 워털루 전투다. 워털루 전투 당시 그루시 원수는 프로이센 군을 추격하라는 나폴레옹의 최초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3만에 달하는 병력을 이끌고 전투와는 관계 없는 곳을 헤매고 다녔는데, 이는 결코 나폴레옹이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때문에 나폴레옹은 그루시에게 전장으로 돌아올 것을 명령하였는데, 이를 위해 보내진 전령이 행방불명되고 말았다. 결국 그루시는 계속해서 의미 없는 방황을 할 뿐 전투에 어떠한 도움도 주지 못했다. 그루시 휘하의 병력이 조기에 전장에 합류했다면, 전투의 양상은 전혀 다르게 전개되었을 것이다. 지휘전달체계의 문제점 때문에, 전투의 승패가 갈리고 만 것이었다. 


 2. C3I의 도입

 위에서 언급한 지휘전달체계의 문제점을 해소하기 위하여 도입된 것이 C3I 체계이다. C3I란 Command, Control, Communication & Intelligence 즉 지휘, 통제, 통신 및 정보의 약어이다. 이러한 요소를 통합하여 통합적인 지휘체계를 구축한다는 것이 C3I의 본질인데, 이 중 C3I의 성립을 가능하게 한 중요한 요소는 Communication, 바로 통신이었다. 특히 2차대전때부터 적극적으로 사용된 무전기는 전장의 상황을 완벽히 바꾸어 놓았다. 이를 잘 보여준 것은 2차대전 초기의 프랑스 전역. 독일군은 전차마다 무전기를 탑재하고 지속적인 정보 교류와 유동적인 전술 운용을 통해 프랑스군을 격파하였다.

 C3I가 도입된 군대의 전투를 한번 상상해 보자. 대한민국군 또한 C3I 체계를 갖추고 있으니 대한민국군을 떠올려도 될 것이다. 전술의 결정은 지휘통제소에서 이루어진다. 지휘통제소의 무전망으로 전방 정찰부대가 입수한 정보가 계속 전해진다. 정보의 전달은 과거와 달리 실시간으로 이루어지며, 지휘관은 지휘통제소에 앉아있으면서도 전장 전체를 관측할 수 있게 된다. 참모들과 휘하 작전병들은 무전으로 전해진 전장 정보를 계속해서 전술지도에 반영하고, 최적의 대응방안을 모색한다. 전투상황에서도 일선 지휘관들은 얻어지는 정보를 계속해서 지휘통제소로 전달하며, 지휘통제소는 이를 종합하여 결정을 내리고 새로운 명령을 하달한다. 모든 과정이 무전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에 과거와 같은 시간차는 발생하지 않는다. 부대 간 연계도 상대적으로 용이하다.

 그러나 이러한 체계 또한 완벽한 것은 아니다. 일단, 정보가 결국 지휘통제소에서만 종합된다는 문제가 있다. 모든 정보를 무전기를 통해 모든 부대에게 전파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각 부대와 개인이 가지게 되는 정보는 직접 수집한 정보와 지휘통제소에서 선별적으로 전달한 정보로 제한된다. 이 과정에서 지휘통제소가 필수적인 정보를 누락할 경우 일선 지휘관의 전술판단에 심대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또한, 정보의 변질이 문제되기도 한다. 정보가 주로 무전, 즉 말의 형태로 전달되다 보니 발송자측의 부정확한 발송이나 수신자측의 착오 등에 의해 본래 의도와는 다른 정보가 돌아다니게 될 수 있는 것이다. 말을 통해 정보를 전달하게 되므로, 이를 판독하여 전투정보시스템에 반영하는 데에 시간이 걸린다는 점도 흔히 지적된다. 정보가 지휘체계를 통해서만 전달되므로 각 부대 간 연계가 늦어진다는 문제점도 있다. 예컨대, 포병지원이 필요할 경우 C3I 체계 하에서는 포병부대에 바로 연락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지휘통제소에 요청을 한 후 지휘통제소가 포병에 포격명령을 내리는 형태로 연계가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간 손실은 급변하는 현대 전장에서는 무시하지 못할 요소이다.

 
4. C4I 체계

 위에서 언급한 C3I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더 나은 전투정보전달 및 지휘전달체계 확립을 위하여 각국에서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 C4I 체계이다. C4I는 Command, Control, Communication, Computer & Intelligence의 약자로서, 기존의 C3I 체계에서 정보 전달 수단으로 이용되던 무전을 컴퓨터 네트워크로 대체하고 지휘통제소의 정보 판독 및 반영을 자동화된 컴퓨터 시스템을 통해 수행하는 것을 그 핵심으로 한다. 

 C4I 체계가 갖춰지면, 정보는 주로 컴퓨터 단말을 통해 전달된다. 적을 발견한 정찰조는 더 이상 무전기를 붙잡고 "전방 1km 지점에 적 전차 17대 발견! 동쪽으로 이동중입니다!" 라고 외치지 않는다. 그저 단말기를 꺼내 들고, 단말기에 표시된 지도 위를 몇 번 클릭할 뿐이다. 정찰조가 단말기에 발견된 적 정보를 입력하면, 이는 즉시 다른 모든 부대나 개인이 가진 단말기에 반영되어 표기된다. 물론 지휘통제소의 전자 전투정보시스템에도 마찬가지. 참모진은 지도 위에 적 전차를 표시하거나, 도착시간을 파악하기 위해 적 전차의 속도와 거리를 계산기에 두드려넣을 필요가 없다. 정찰조가 속도와 이동방향을 입력하는 즉시 전투정보시스템의 컴퓨터가 자동으로 필요한 정보를 모두 계산해 주기 때문이다. 이렇게 얻어진 2차 정보 또한 즉시 전 병력의 단말기로 전송된다.

 모든 정보가 모든 부대단위에 공유되기 때문에, 부대 간 연계나 상호 지원은 훨씬 용이해지며 명령 및 정보 전달 과정에서의 시차도 극적으로 줄어들게 된다. 정보의 변질가능성이 적어짐은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정보의 수신자가 받는 정보가 송신자가 입력한 "바로 그 정보"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이전의 C3I 체계에서 포격요청이 "포격 요청한다. 좌표는 CG 264891..." 의 형태로 이루어졌다면, C4I 체계에서는 적 위치를 지도에 입력한 뒤 포격지원 요청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된다. 정찰조가 보낸 정보를 받은 아군 상위 편제가 정찰조가 요청도 하기 전에 지원수단을 투사할 수도 있을 것이고. 

 아군의 위치변화 또한 즉각적으로 전 부대에 공유되는데, 이는 아군 간 오인사격이 일어날 가능성도 매우 낮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군의 위치 또한 즉각적으로 반영되기 때문에, 다른 아군 병력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몰라서 잘못된 판단을 내리게 되는 경우도 줄어들게 될 것이다.

 컴퓨터의 정보처리능력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 또한 C4I 체계의 장점이다. 컴퓨터는 2차정보를 생산하기도 하며, 인접부대 및 타군의 정보를 통합하여 선택가능한 전술기능들의 목록을 제공해주기도 한다. 예컨대 "여기여기에 적 지휘소가 있는 걸로 보입니다. 이 목표를 타격하기 위해 사용가능한 수단으로 현재 155mm 자주포 2개 포대가 있으며, 타군 지원가능 수단으로 KF-16 전투기 1개 편대가 있습니다." 라는 정보를 디스플레이에 띄워준다는 것.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자동적으로, 거의 즉시 이루어지기 때문에 의사결정 과정에서의 시간 소요가 극적으로 줄어든다. 그야말로, 게임같은 전쟁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장점이 있기 때문에, 대한민국군을 포함한 각국군은 C4I 체계를 도입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여 전투정보장비를 확충하고 있으며, 이러한 투자는 궁극적으로 군 전투력의 극적인 향상에 기여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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