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자치에 정당이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한가 : 기초자치단체 정당공천제 폐지를 중심으로 [하나마나한 말들]


1. 들어가며

 기초자치단체 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를 주장하는 물살이 거세지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새누리당과 민주당 모두가 기초자치단체 선거 정당공천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안철수 의원 또한 같은 견해를 표해 큰 호응을 얻었다. 이후 다양한 정치계층에서 기초자치단체 정당공천제 폐지를 주장하고 나섰으며, 최근 이루어진 광역자치단체장들에 대한 조사에서는 17명의 광역자치단체장 중 단 한명만이 기초자치단체 정당공천을 유지해야 한다고 밝혔다.1) 여론 또한 기초자치단체 정당공천제 폐지에 우호적이다. 조사대상 국민의 63%가 정당공천을 폐지해야 한다고 밝혔다는 한 여론조사 결과2)는 이러한 동향을 잘 보여준다. 

 기초자치단체 정당공천제 폐지에 많은 사람들이 찬성하는 것은, 결국 우리 사회에 팽배한 정당에 대한 불신 때문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우리나라의 정당은 명백히 약하고,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정당은 존재하는 균열을 사회화하여 정치적 의제로 형성해내기보다는 행정부가 제시하는 의제에 끌려다니고 있고, 그 의제 내에서도 주도적인 역할을 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이니, "(정당)정치는 공분의 대상이 되었다."3)는 말을 들어도 이상할 것이 없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사실이 기초자치단체 정당공천제 폐지의 확고부동한 근거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정당은 근대 정치의 생명선"이라는 Neumann의 말마따나, 현대 대의민주주의에서 정당의 역할은 필수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정당의 역할을 강조하는 이들은 지방자치에서 정당을 배제하는 것이 오히려 민주적이고 바람직한 지방자치의 형성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글에서는 기초자치단체 정당공천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과, 그에 대한 반론을 살펴볼 것이다. 이를 통해 독자들이 지방자치와 정당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4)


2. 지방자치의 비정치성 논쟁

 기초자치단체 정당공천제 폐지를 주장하는 하나의 강력한 논거는 지방자치는 정치보다는 행정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는 20세기 미국 진보주의 운동과 유사한 맥락에서 나온 논의라고 볼 수 있다. 19세기 중엽의 엽관제5)에 의해 발생한 부패와 비효율 때문에 정치에 회의를 느낀 이들이 진보주의 운동을 통해 "정치와 행정의 분리"를 주장한 것과, 현재 한국에서 기초자치단체 정당공천제 폐지가 대두되는 모습은 많이 닮아있다. 정당참여 배제론자들은 지방자치는 정치적 갈등 조율보다는 주어진 목표의 효율적 시행이라는 행정의 성격이 강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지방자치에 정당이 개입하면 정파적 논리에 따라 비효율성이 초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쓰레기 줍는 데 민주당 공화당이 따로 있냐"는 말은 지방자치의 행정적 성격에 대한 견해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표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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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정당의 역할을 강조하는 이들은 이러한 견해는 지방자치를 너무 단순화한 견해라고 비판한다. 행정적 기능은 지방정부가 수행해야 할 아주 중요한 기능이기는 하지만, 그에 못지 않은 정치적 역할 또한 지방정부에게 주어진다는 것이다. 행정의 지방화, 분권화가 이루어지면서 지방자치의 정치적 역할은 더욱 커졌다. 그중에서도 특히 갈등의 관리와 조율 기능이 강조되는데, 행정의 분권화로 지역내 혹은 지역간 갈등이 빈번하게 발생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서울시 무상급식 조례에 대한 각 구 내에서의 의견갈등이나 방폐장 유치를 둘러싼 포항, 경주, 울진의 갈등과 같은 사례들은 지방자치단체가 수행해야 할 일이 더이상 행정에만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정당참여 긍정론자들은 이러한 정치적 이슈는 결국 정당을 통해 사회화시켜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3. 지방정치의 중앙정치에의 예속 문제

 정당참여 배제론자들은 지방선거에 정당참여를 인정할 경우, 지방의 이슈가 아닌 전국적 이슈 혹은 중앙당에 대한 평가에 따라 지방공직자가 선출될 것을 우려한다. 이는 결국 중앙 이슈가 지방 이슈를 매몰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주장이다. 근래의 지방선거가 상당부분 전국단위 이슈에 의한 "공중전" 성향을 띠었다는 점이 그 근거로 제시된다. 이러한 우려는 한국의 정치현실과 맞물려 더 큰 문제를 발생시킨다. 한국의 정당 내부구조는 상당부분 집권적이고 수직적인 형태를 띠고 있는데, 이러한 구조에 의해 중앙의 정쟁이 지방으로 이어져 지방에서의 대리전 양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지방정치를 실종시키고 지역 이슈 해결을 방해하는 결과를 낳는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공천의 민주성 또한 문제로 제기되는데, 후보자 공천이 상당부분 정당 지도부에 의해 집권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 문제된다. 정당 배제론자들은 정당공천제 하에서는 정당이 후보자에 대한 독점적인 공천권을 행사함으로서 지방정치인이 중앙정치인에게 종속되게 되고, 이는 지방정치인이 지방 이슈보다는 중앙 이슈에 천착하도록 만들어 지방자치를 질식시키게 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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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당 긍정론자들 또한 우리나라 정당의 수직적 지배구조가 문제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이들은 정당 배제론자들과는 다른 시각에서 문제를 바라본다. 이들이 강조하는 것은, 정당공천을 통해 지방 정치인들이 중앙 정치와 연결되게 되면 중앙이 지방에 악영향을 미치는 독단적인 판단을 하기 어렵게 된다는 점이다. 지방의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거나 지방에 일방적인 피해를 주는 정책을 강행할 경우 자신들의 지지기반을 상실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중앙과 연결된 지방정치인들은 지역의 여론을 중앙에 전달하는 연결고리이자 중앙정부의 일방적인 정책 집행에 제동을 걸 수 있는 거부점(veto point)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 정당 긍정론자들의 주장이다.

 동시에, 정당 긍정론자들은 지역 정치인의 이러한 기능이 집권적 정당을 분권화시키는 데에 도움이 될 가능성 또한 강조한다. 지방정치에서의 상향적 의사전달과 거부점 역할이 중앙정치에 과집중된 권한을 제어하고 분산시키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들은 정당의 집권적 수직지배구조는 "중앙과 지역을 막론하고 정치 전반에서" 풀어가야 할 문제일 따름이며, 이를 이유로 지방자치단체 정당공천을 폐지하는 것은 "정당의 집권적 지배구조 때문에 각종 문제가 발생하니 국회의원 정당공천을 폐지하자"고 주장하는 것만큼이나 이상한, 선후가 뒤바뀐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4. 정당의 책임성 저조 문제

 기초자치단체 정당공천 폐지를 주장하는 이들은 한국의 정당은 선진국의 정당과는 달리 그 책임성이 매우 저조하며, 이러한 정당이 그 영역을 넓히면 오히려 부작용만 발생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당 자체는 바람직한 제도이나, 한국의 정당은 오히려 부작용만 더 일으킬 수 있는 잘못된 정당이기 때문에 배제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이다. 특히 중앙집권적 공천제도에 의해 발생할 공천비리가 문제된다. 이런 이유로 이들은 "설혹 정당참여 허용의 필요성이 인정된다 하더라도 정당참여는 배제되거나 혹은 여건이 성숙할때까지 허용이 연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6) 이러한 주장과 결을 같이하여, 정당이 국민적으로 신뢰를 잃고 있는 상황에서 불신받는 정당이 주체가 되어 지역주민을 지배하도록 하는 기초자치단체 정당공천이 과연 타당한 제도인가 하는 회의적 견해 또한 제기된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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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당 배제론자들의 이러한 견해에 대해, 정당 긍정론자들은 그것이 정당에 대한 과도한 비관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비판한다. 현재 정당이 이러한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고쳐져야 할 정당현실에 대한 진단으로 타당한 것이지, 이것을 근거로 정당참여를 배제하는 것은 정당에 대해 사망선고를 내리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것이다. 이들의 이러한 주장에는 위 항목에서 서술한 바와 같이 정당을 지역사회에 밀착시키는 것이 정당현실의 개선을 위한 한 방안일 수 있다는 인식이 전제되어 있다. 정당 배제론자들의 이같은 주장이 오히려 정당현실의 개선기회를 틀어막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지적이 그 핵심이다. "(정당)불신의 대상에서 중앙당이 예외가 아닌 한, 지방에서 정당참여가 금지되어야 한다면 당연히 중앙정치에서도 정당참여가 배제"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냐는 반문8) 또한 던져진다.

 또한 정당 긍정론자들은 오히려 정당의 배제가 지역정치의 책임성 약화를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당공천이 없을 때 정당이 (인물에 대해) 책임을 지면서 그다음 선거에서 평가를 받는 책임성이 없어지는 것”이며 “(정당 대신) 개인이 책임을 지게 되는 것 (...) 행정기관이나 지자체 운영 등 (인물의) 역할과 권력은 비대한데, 여기에 따르는 책임은 약해지는 것"이라는 최장집의 주장9)이 이러한 견해를 담고 있다. 정당은 후보자에게 상표가치brand name"을 제공10)11)하여 유권자에게 정보를 제공함과 동시에 후보자의 책임을 공유한다. 이를 통해 혹여 후보자가 책임에서 도피하거나 책임을 무시하더라도 정당이 책임의 주체가 되어 책임성을 확보할 수 있으며, 이러한 기제가 배제될 경우 지방자치에서의 후보자의 책임성은 현저하게 낮아진다는 것이다.

 일부 정당 긍정론자들은  "정당배제론은 현재 지방정치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문제점을 정당의 탓으로 왜곡하고 과장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혹은 "오늘날 지방정치에서 나타나고 있는 문제점들의 대개는 정당공천 탓이 아니라 '경쟁과 견제의 민주주의 원리'가 작동하고 있지 못한 지방정치 자체에 내재"12)된 것이라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지방자치에 정치적 요소가 너무 유입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충분히 정치적이지 않은 지방정치가 문제의 원인이 된다는 주장이다.



5. 결론

 정치가 분권화되고, 지방 이슈에 대한 자치의 원리가 강조되면서 지방자치의 중요성은 날로 강조되고 있다. 지방자치는 민주주의 학습의 장으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할 뿐 아니라 그 자체로 민주주의의 현장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지방자치제도에 대한 결정은 상당 부분 "중앙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맞물려 그때 그때의 상황논리에 의해 파행적으로 이루어져"13) 온 것이 사실이다. 

 이 글을 작성한 나 자신과 이 글에 제시된 각 논문들은 모두 기초자치단체 정당공천제의 폐지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하지만 그 의견이 옳다는 점을 이 글에서 강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지방자치가 중앙정치로부터 유리된 무언가가 아니라 민주주의 정치과정의 한 부분이라는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지방자치는 정치의 영역이 아니므로 정당의 역할을 배제해야 한다는 견해는 지방자치의 본질을 다소 잘못 파악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오히려, 정당을 배제하는 것과 긍정하는 것 중, 어떤 것이 '민주 정치의 한 과정'으로서의 지방자치에 더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질문이다.

 따라서, 기초자치단체 정당공천제에 대해 판단하기 위해 우리는 기존에 제시된 행정적 효율성과 동시에 참여와 대표, 책임과 같은 민주주의의 가치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이런 요소를 통합적으로 고려하여 "정치로서의 지방자치"의 발전을 목표로 한 결정을 내릴 때 지방자치는 발전할 수 있을 것이며, 그를 통해 중앙정치 또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각주>----
1)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6668402 
2) http://www.siminilbo.co.kr/news/articleView.html?idxno=326786
3) 최장집, 민주화 이후의 민주주의, 2002
4) 이하 내용은 <이승종, 지방자치발전을 위한 정당참여의 방향, 2009>의 내용을 상당부분 참고함
5) 공무원의 임면을 (정치)당파에 근거하여 시행하는 제도이다. 엽관제하에서 공직은 일종의 정치적 트로피로서 승리한 정파에게 배분되는데, 이러한 모습을 잘 보여주는 슬로건이 "전리품은 승자에게(to the victor, belong the spoils)"이다.
6) 최병대, 1995 
7) 이남영,1995 
8) 이승종, 2009 
9) http://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40956 
10) 조진만, <여론조사 공천의 이론적 쟁점과 기술적 과제, 그리고 정당의 선택>, 2012
11) 이승종, 2009 
12) 유재일/정상호, <지방정치에서 정당정치의 위상과 과제>, 2009
13) 이승종,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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