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와 포퓰리즘 [하나마나한 말들]


1. 들어가며

 6.4 지방선거를 앞두고 안철수 신당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익숙한 풍경이다. 지난 서울시장 선거와 대선에서도 안철수는 선거 판도를 바꿀 수 있는 핵심 인물로 지목되었다. 각 선거의 국면마다 안철수는 대승적 차원에서의 양보라는 형태로 후보에서 물러났지만,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예측이 지배적이다.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안철수가 정당을 구성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는 것이다. 정당 조직의 목적은 권력의 획득이므로, 정당을 구성하겠다는 것은 곧 권력을 추구하겠다는 선언이라는 분석이다. 

 안철수의 이러한 행보에, 안철수에게 잠정적 지지를 보내던 많은 사람들이 환영의 뜻을 밝혔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소위 "안철수 현상"에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주된 비판은, 안철수가 구체적인 지향을 드러내어 정치적 시험대에 자신을 드러내놓기보다는 소외된 국민들의 열망만을 취하는 포퓰리즘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포퓰리즘 이론을 통해 바라본 안철수 현상은, 우리에게 여러가지 시사점을 던져준다.


2. 포퓰리즘의 개념

 "포퓰리즘populism"이라는 개념에 대해 사람들이 흔히 떠올리는 이미지는 무절제한 인기영합주의이다. 때문에, 우리 사회의 포퓰리즘 논쟁은 흔히 복지정책의 영역에서 이루어졌다. 예컨대 이런 식이다. "그 정책은 정치적 인기를 얻기 위해 별 쓸모도 없는 일에 돈을 퍼주는,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책이다!" 

 이러한 견해는 포퓰리즘을 정책 자체의 성질로 파악한다. 정책의 내용에 따라 포퓰리즘적인 정책이냐 아니냐가 결정된다는 것이다. 언론에서도 "무상급식은 포퓰리즘 정책" "무상의료는 포퓰리즘 정책" 등의 표현을 사용하여 포퓰리즘을 정책 내용적 개념으로 한정짓는다. 그러나 정치학자들에 의해 정립된 포퓰리즘의 개념은 이와는 사뭇 다르다.1)

  포퓰리즘의 개념에 대한 여러 견해를 살펴볼 때, 포퓰리즘의 정의에 대한 일관된 합의는 이루어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최장집은 포퓰리즘을 "민중적 열정, 에너지, 동력이 사회의 자율적 운영 집단, 즉 정당이나 이익집단 또는 어떤 목표와 가치를 추구하는 운동 등으로 매개되지 않고 표출되는 현상"2)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반면 P. Taggart는 포퓰리즘은 일반적으로 정의되기는 어렵다고 말하며 그 중요한 성질을 통해 포퓰리즘의 본질을 설명하고자 하였다. 그에 의하면 포퓰리즘의 핵심적 성질은 대의제 정치에 대한 적개심, 마음속의 고향에 대한 낭만적 신비화, 중심이 없는 이데올로기, 위기 상황에 대한 대응, 일정 수준 발전하기 어려운 근본적 딜레마, 주변 환경에 따라 카멜레온처럼 바뀌는 정체성이다. 이에 서병훈은 포퓰리즘을 "인민주권 회복론과 선동 정치인에 의한 감성 자극적 단순 정치라는 두 기둥 위에 서 있는 정치현상"이라고 설명하였다.3)

 포퓰리즘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기는 어려운 일이지만, 위에서 볼 수 있듯이 여러 학자들의 설명은 일관적으로 포퓰리즘을 정치행태의 측면에서 바라보고 있다. 포퓰리즘은 정책의 내용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정책 결정 과정에서의 국민과의 접촉 방식에서 비롯된다. 

 포퓰리즘을 정치행태 측면에서 바라볼 때 가장 강조되는 것은 포퓰리즘의 체제 우회적 성격이다. 포퓰리즘은 기존의 갈등 사회화 시스템을 우회하여 대중의 감정적 열망을 직접적으로 정치적 결과로 현출해내고자 하는 행태이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전 국민에게 백만원씩을 드리겠습니다!" 만 포퓰리즘이 아니라, "여러분 정당이니 의회니 하는 건 다 썩었어요. 다 나쁜놈들이에요. 깨끗하고 선량한 제가 대신 여러분의 열망을 이뤄드리겠습니다!" 라는 식으로 인기를 모으는 것 또한 포퓰리즘의 한 형태라는 것이다.


3. 안철수와 포퓰리즘

1) 정당과 대의제에 대한 적개심

 안철수는 기성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회의와 불신이 만들어낸 틈을 비집고 등장하였다. 무상급식 등 여러 아젠다를 둘러싼 여야의 정쟁이 극에 달하고 이명박 대통령의 실정이 노출되어 사람들의 정치에 대한 피로감이 극에 달했을 때, 안철수는 마치 메시아처럼 국민의 열망을 등에 업고 한국 정치에 "강림"하였던 것이다. 등장해서부터 안철수가 강조한 것은 기성 정치와의 차별, 그리고 "상식과 원칙의 준수"라는 도덕 영역의 가치관이었다. 

 안철수 현상은 상식과 원칙의 안철수 대 부패하고 무능한 기성 정치세력의 구도로 도식화된다. 이 과정에서 기존의 정당, 의회 시스템은 타파해야 할 악의 자리에 놓인다. 중요한 것은, 안철수가 비판하고 있는 것이 특정 정당이나 혹은 특정한 이념체계가 아니라는 점이다. 안철수의 비판은 오히려 정당 체제의 필연성에 대한 비판에 가깝다. 지금의 정당은 썩었기 때문에, 정당을 우회하는 것이 필요하거나, 혹은 나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지난 대선 당시, 안철수는 무소속으로 대통령이 되는 것이 과연 가능한가 하는 비판에 "무소속 대통령이 나라를 어떻게 끌고 가느냐는 질문이 나왔는데, 사실 본질적으로 그 질문을 할 때가 아니다" "(정당이) 낡은 정치시스템을 개혁하고 혁신해서 다시는 그런 정치를 안 하겠다고 (하고), 국민이 믿을 때 `무소속 대통령이 가능하냐'고 물어봐야 한다"4)고 답했다. 이는 정당이 자기 역할을 다 할 필요가 있다는 온건한 일반론처럼 보인다. 하지만 당시 안철수가 무소속으로서 국민의 열망을 반영한다는 기치 하에 대권에 대한 뜻을 밝혔다는 점을 감안하면 다른 맥락을 읽어낼 수 있다. 어차피 정당이 제 역할을 제대로 못 하고 있는데 무소속이면 뭐 어떠냐는 것.

 여기에 더해, 안철수는 기성 정당의 "기득권 내려놓기"라는 이름으로 대의제의 핵심적 갈등 사회화 기제인 정당을 약화시키는 정책들을 주문한다. 국회의원수 축소, 정당 보조금 삭감, 중앙당 축소 및 원내정당화, 기초자치단체 정당공천 폐지 등 안철수가 내 놓는 정치 개혁 플랜들5)은 모두 정당을 약화시키고 그 기능을 의원에 대한 지원 정도로 제한하는 것들이다. 이에 반발하는 정치인들은 어김없이 "밥그릇 지키기"라는 비판을 받는다. 그러나 최장집을 비롯한 많은 정치학자들은 이러한 개혁이 정당의 역할을 약화함으로서 결국 민주주의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한다.6)

 이러한 기성 대의제-정당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은 포퓰리스트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포퓰리스트들은 스스로 진정한 민주주의자라고 자부하는 바, 정부와 기성 정당, 언론 등에 의해 체계적으로 무시당하는 대중의 분노와 슬픔, 이익과 의견을 대변한다고 주장"7)하는 것이다. 포퓰리즘은 기존 정치체제에 대한 적개심을 동력으로 존속한다. "고전적 포퓰리스트들은 물론이고 현대의 서구나 라틴 아메리카 등 모든 곳의 포퓰리스트들은 정치를 더럽고 타락한 것으로 간주한다. 인민들을 나락으로 몰아넣고 있는 부패한 정치꾼들의 활동무대가 바로 정치 현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들은) 기성 정치인들에 대한 혐오를 정치 자체에 대한 부정적 시각으로 연결시키며, 기득권 질서에 대해 반발하면서도 현실 정치에 대한 직접 참여는 기피한다. 오히려 자신이 기존 정치권 바깥에 있음을 강조하며, 기성 정치권을 질타하고 비난함으로써 자신들의 존재를 정당화하는 것이다."8) 라는 서병훈의 말은 포퓰리즘의 이러한 성질을 잘 보여주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행태가 결국은 민주주의를 해칠 것이라는 점이다. 정당은 대의민주주의의 성립과 정상적인 작동에 필수적인 역할을 한다. E. E. Schattchneider는 "정당을 빼놓고는 민주주의를 말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고, Neumann은 "정당은 근대 정치의 생명선"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정당이 결국 가장 폭넓게, 가장 효과적으로 모든 계층의 의사를 집약하고 갈등을 사회화할 수 있는 기구이기 때문이다. 투표라는 제도를 통해 첨예히 경쟁하는 정당은 운동이나 직접행동 등의 다른 방안보다 훨씬 민주적이며 지속가능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9) 정당간의 경쟁 구도, 즉 정당 체제는 사회적 갈등과 균열을 조직화하여 투표 가능한 대안으로서 유권자에게 제시한다. 유권자들은 정당을 통해 의사를 통합하고 정책결정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이러한 체계는 선거로 제도화됨으로써 가장 보편적으로 수행된다. 정당이 없이 이런 보편적인 의사 전달은 불가능에 가깝다. 설령 직접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하더라도 그러하다. 직접민주주의 제도는 오히려 유력자의 개입가능성을 높이고 모든 국민에게 이슈에 대한 견해를 요청함으로써 기득권, 엘리트 중심의 오도된 합의(deceived consensus)를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물론, 한국의 정당이 이러한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할 수는 있다. 많은 학자들이 한국 정당들의 행태를 비판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정당이라는 제도 자체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정당민주주의의 운영이 잘못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한국 정치의 많은 문제는 정당의 역할이 너무 약해서 행정부가 설정하는 아젠다에 끌려다니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이러한 견해에 따르면, 한국 정치 정상화의 첫 단추는 정당의 정상화라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안철수의 개혁이 한국 정당의 문제점들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이 아니라 정당 자체를 약화시켜 현존하는 부정적 영향력을 줄이려는 것이라는 점이다. 정당이 수행하고 있는 역할 뿐 아니라 정당이 배제된 자리를 무엇이 대체할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면 이러한 개혁이 바람직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포퓰리즘을 연구하는 학자들 또한 이런 맥락에서 포퓰리스트들의 정당, 의회에 대한 공격이 정치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주장한다. "민주주의를 근간에서부터 위협하는 것이 바로 포퓰리즘"10)인 것이다.

2) 엘리트주의로의 귀착

 정치학자들은 포퓰리즘이 결국은 엘리트주의를 내포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포퓰리즘이 '진정' 국민을 위한 정치를 표방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아이러니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실제로 엘리트주의적 성격을 보이는 많은 포퓰리즘 정권을 알고 있다. 포퓰리즘 정권에서 정책들은 "국민을 위한 정권의 결단"이라는 형태로 하향식으로 집행된다. 정책의 과실을 누리는 것은 민중이지만 정책 결정과 집행은 철저히 정치엘리트들에 의해 이루어진다. 서병훈은 그 원인을 포퓰리즘과 엘리트주의의 유사한 성질에서 찾는다. "포퓰리즘과 엘리트주의는 세상을 이분법으로 나누어서 본다는 점에서 정확하게 일치"11)한다는 것이다. E.Laclau는 이런 모습을 엘리트주의와 포퓰리즘은 서로 반대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거울처럼 서로를 비추는 존재라고 비유한 바 있다.

 안철수 역시 선악의 명확한 구분, 즉 악으로서의 기성 정치와 선이자 구원자로서의 자기 자신을 대비시킨다. 이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뒷받침할 수 있는 세력이 두가지 등장하는데, 하나는 안철수가 항상 강조하는 "기성 정치권에 실망한 국민"이며, 다른 하나는 "전문가"이다. 부패한 세력인 정당을 갈음할 수 있는 세력으로 안철수는 전문가를 꼽는다.12) 안철수는 대선후보 당시 야권단일후보 경선 방식 중 하나로 전문가 평가를 제시했는데 이는 이전에 없던 이례적인 방식이다. 안철수의 전문가에 대한 신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안철수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권력의 상당부분을 전문가인 관료들에게 넘기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는 한국 정치의 테크노크라시(technocracy-기술 관료에 의한 사실상의 과두정치)화를 촉진할 수 있는 위험한 방안으로, 많은 학자들은 오히려 기술관료에 대한 견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외에도 안철수는 여러 입장발표에서 꼬박꼬박 국민과 전문가의 의견을 통해 의사결정을 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을 강조하면서 동시에 악으로부터 격리된 순수한 전문가집단을 기반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이는 위에서 언급한 포퓰리즘의 성질과 꼭 닮아있다. 

 안철수가 전문가 정치를 강조하는 이유는 그가 정치적 경쟁을 악으로 보기 때문이다. 안철수의 정치관은 다분히 선악이분적이며, 싸움이 곧 악이다. 안철수는 정치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최선의 방안이 있으며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듯 보인다. 최선을 방안을 찾는 데 필요한 것은 전문가들의 전문지식과 선의이다. 정치세력들의 경쟁을 통해 "절대선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사회적으로 조율된 결정"을 내리는 것을 골자로 하는 민주주의와는 완벽히 배치되는 개념이다. 후마니타스 박상훈 대표는 안철수의 이런 정치관을 "아직까지 안 후보는 군주정과 엘리트 중심의 귀족정 원리가 결합해 있는 형태로 밖에 안 보인다."13)는 말로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재미있는 점은, 안철수는 정작 그 전문가들의 말조차 잘 수용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모두가 잘 아는 최장집과의 갈등을 한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다. 안철수는 기껏 최장집을 영입했지만, 위에서 보듯이 안철수가 내놓은 정책들은 죄다 최장집이 극도로 반대하는 방향인 정당의 약화를 책동하는 것들이었다. 그 과정에서 갈등이 발생했지만 최장집의 견해가 수용된 것처럼 보이는 부분은 놀랍게도 단 하나도 없다. 최장집이 안철수를 떠나며 던진 "내 역할이 없었다"는 말14)은 이런 측면에서 의미심장하다. 안철수가 내놓는 정책들 중 밑에서부터 제안되어 올라간 것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 또한 안철수의 엘리트주의적 성격을 바라볼 수 있는 한 측면이다. 안철수는 포퓰리즘은 "이름과 걸맞지 않게 인민은 허울뿐이고 카리스마를 앞세운 지도자가 주인공이 되는 것"이며, "엄밀히 말하면 새로운 형태의 과두 지배체제에 지나지 않는다"15)는 지적과 정확히 동일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3) 모호한 이데올로기와 기회주의적 노선, 자가당착

 안철수에 대해 가장 많이 나오는 지적 중 하나는 그가 "정말로 뭘 말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중요한 정치적 사안들에 대해 안철수는 그리 명백한 견해를 밝히지 않는다. 물론 뭔가 견해를 밝히긴 하는데, 죄다 도덕책에서 나올 법한 얘기들이다. 철도파업의 국면에서 안철수 측은 "노사정 위원회를 재개해야 한다"16)와 같은 사실상 실현가능성도 의미도 없는 얘기를 툭 던졌을 뿐이며, 많은 언론들이 철도파업 정국에서 안철수의 존재감이 전혀 없었다고 지적했다.

 안철수가 흔히 비유하듯 "공기가 되었"던 것17)은 이번뿐만이 아니다. 국정원의 선거개입에 대해서도 안철수는 국정원 선거개입 문제는 사법기관인 특검에 맡기고 국회는 그 문제에서 손을 떼자고 주장18)했는데, 의회가 지극히 정치적인 문제에서 손을 떼야 한다는 주장 역시 실현가능성도 의미도 없다. 오히려 안철수의 의회에 대한 불신과 엘리트에 대한 믿음만을 확고히 보여줄 뿐이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적 모호성은 흔히 모두를 대표한다는 기치 하에 일어서는 포퓰리즘의 모습으로 지적된다. 포퓰리즘은 선악의 이분법을 근간으로 하기 때문에, 이데올로기적 대립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데올로기는 경합 가능한 개념이다. 아니, 이데올로기는 경합을 전제로 하는 개념이다. 한 이데올로기는 끊임없이 다른 이데올로기와 부딪힘으로서 스스로를 정체화한다. 그러나 선악은 다르다. 선과 악 사이에서 경합은 이루어질 수 없다. 선은 그냥 선이고 악은 그냥 악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포퓰리스트들은 그저 자신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주장할 뿐 이데올로기를 내포한 의미있는 말을 하지 않는다. P.Taggart가 포퓰리즘의 중심 주제 중 하나로 "중심이 없는 이데올로기"를 제시한 것은 이러한 이유에서이다. 안철수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이런 측면에서 어느정도 타당성을 가진다고 볼 수 있다. 안철수는 말을 하긴 하지만, 사실상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나 다름 없는 말들을 너무도 많이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의 모호성은 포퓰리즘이 현실정치로 나아갈 때 걸림돌이 된다. 포퓰리즘은 정치세력의 근간이 될 이데올로기는 없이 기존 정치에 대한 회의와 도덕적 이분법만을 가지고 세력을 얻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까지나 정치 바깥에 머무를 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포퓰리스트들은 재미있는 형태로 정치에 뛰어들곤 한다. 그들은 "언제까지나 정치에 등을 돌릴 수는 없으며, 정권을 획득하기 위해서는 더러운 정치판에 뛰어들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마지못해 정치에 참여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데, 예외적 상황, 특히 국가의 위기적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구국의 결단'을 내리는 모양새를 취한다."19)

 안철수 또한 이런 형태로 정치에 뛰어들었음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안철수는 계속해서 자신은 정치를 하지 않을 것임을 천명20)하고, 자신은 정치인으로서는 부적절하다고 말해왔다. 심지어는 정치에 뛰어든 이후에도, 안철수는 "~했으면 정치 안 했을 거다" 라는 식의 얘기를 종종 던졌다.21)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나라 꼴이 말이 아니니 '구국의 결단'을 내려 정치를 시작했다는 것이다. 포퓰리스트들의 '전형적 행태'를 말한 서병훈의 글이 마치 안철수에 대한 예언처럼 읽히는 것은 흥미로운 지점이다.22)

 '구국의 결단' 뒤에도 문제는 발생한다. "제도권 외곽에 있으면서 누리던 정치적 프리미엄을 더 이상 기대할 수 없다. 다른 한편으로 지지자들에게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주어야 하며, 그래야 새로운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포퓰리스트들은 현실 정치에 몸담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현실 정치를 전적으로 외면할 수도 없는 자기모순 앞에서 방황하게 된다."23) 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은 정당의 구성이다. 포퓰리스트들은 대개 정당을 비판하면서 정당의 약화와 전문가 정치를 강조하여 세력을 불리곤 하는데, 정작 정치에 뛰어들기 위해서는 정당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포퓰리즘 정당의 형성은 지지부진하게 이루어지거나, 일종의 임시정당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이는 안철수의 지지부진한 정당 형성을 설명해주는 좋은 틀이다.


4. 포퓰리즘의 배제와 더 나은 정치를 위하여

 포퓰리즘은 기성 정치가 도덕성을 상실하고, 지배 엘리트에 대한 신뢰가 저하되며 인민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없는 상황에 나타난다. "정당체제의 쇠퇴, 피동적 대중의 양산 등 현대 사회의 구조적 특성이 포퓰리스트의 출현을 조장"24)하기도 한다. 이런 환경 하에서 포퓰리스트들은 국민들의 배신감과 억눌린 열망을 대신 표출해주는 대가로 많은 지지를 얻는데, 이는 기성 정당들이 유권자들의 표심을 얻기 위해 유사 포퓰리즘적 행태를 보이게 만드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이러한 포퓰리즘의 등장은 그 자체로 문제지만, 그 이전에 대의민주주의의 위기를 경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N.Bobbio가 말했듯,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의 약속위반을 먹고 살"기 때문이다. 따라서, 포퓰리즘을 배제하는 작업은 포퓰리즘 그 자체에 대해서만 이루어져서는 불충분하다. 포퓰리즘의 배제를 위해서는 정당을 통한 대의 민주주의가 회복되어야 하며, 이는 결국 민주주의의 발전을 뜻한다. 이는 어려운 일일 것이나, 반드시 이루어내야 할 일이다. 

 위에서 논의한 바와 같이, 안철수의 행보는 학자들이 정리하는 포퓰리즘의 전형적인 그것과 매우 닮아 있다. 안철수와 그 세력을 포퓰리즘 세력이라 한다면, 안철수의 등장과 인기몰이는 한국 대의민주주의의 약화를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지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 민주주의의 정상화를 위한 고민이 그 어느때보다도 필요한 시점이다.


----<각주>----
1) 재미있는 것은, 안철수 본인도 포퓰리즘을 이정도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안철수는 경상대 강연에서 "(정치권이 나의 정치혁신안에)반대할 줄 알았고 예상대로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지만 여러 말씀 중에 제일 가슴 아팠던 부분은 국민들의 정치혐오에 편승한 포퓰리즘이라는 말이었다" "과연 누가 이런 말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할 정도로 무서운 말이었다" "그게 포퓰리즘이라면 지역마다 개발공약을 내고 장밋빛 공약을 내는 게 포퓰리즘이다. 특권을 내려놓자는 게 왜 포퓰리즘인지 지금도 이해가 안 된다"고 말한 바가 있다. 
2) 최장집, <어떤 민주주의인가>, 2007
3) 서병훈, <포퓰리즘>, 책세상, 2008
4)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21011153210483 
5) http://news.sbs.co.kr/section_news/news_read.jsp?news_id=N1001455191
6) 한 예로 국회의원 수 축소에 대해 최장집은 "우리나라 국회의원은 너무 적다. 오히려 500명으로 늘려야 한다"라고 반박한 바 있다. 강원택 교수 또한 이전에 논의된 의석 수 축소에 부정적 견해를 보였으며, 이외에도 장훈 등 많은 정치학자들이 국회의원 수 축소는 바람직한 방향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7) 서병훈, <포퓰리즘>, 책세상, 2008 
8) 상게서
9) 민주정치에서의 정당의 역할에 대해서는 샤츠슈나이더나 최장집 등의 논의를 추천한다. 이 글에서는 자세히 다루지는 않겠다. 
10) 서병훈, <포퓰리즘>, 책세상, 2008 
11) 상게서
12)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28&aid=0002157862 
13) 2012. 10. 1 미디어오늘 인터뷰 
14) http://www.wikitree.co.kr/main/news_view.php?id=133445 
15) 서병훈, <포퓰리즘>, 책세상, 2008 
16)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422&aid=0000041810 
17) 인터넷에서 존재감이 없는 사람을 비유할 때 흔히 이르는 말
18) http://www.ytn.co.kr/_ln/0101_201311042109102371 
19) 서병훈, <포퓰리즘>, 책세상, 2008 
20) http://article.joins.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6674745&ctg=1000&cloc=joongang|article|headlinenews 
21)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newsview?newsid=20130604202906742 
22) 서병훈의 책은 2008년에 쓰여졌음을 밝힌다. 
23) 서병훈, <포퓰리즘>, 책세상, 2008 
24) 상게서


덧글

  • 김두부외상 2014/01/09 07:38 # 삭제 답글

    헐. 재밌게 보고 감.
  • 도르래 2014/01/09 07:52 # 답글

    문제는 한국 정치를 조망하는 역할을 하는 우리 언론들의 접근 방식이 일반적으로 '정치는 다 썩었다'는 식으로 대중들의 정치불신을 조장하고 있다는거죠. 안철수가 포퓰리스트인가를 논하기애 앞서서 포퓰리스트나 포퓰리즘적 정책이 난무하게 한 일차적 원인은 우리 언론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 veritas 2014/01/09 10:35 # 답글

    잘 읽었습니다. 안철수와 최장집의 결합은 예상외였지만, 결말은 예상대로였습니다.
  • umma55 2014/01/09 12:47 # 답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2014/06/15 20:56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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